단순히 춤만 잘 추고, 잘생긴 얼굴로 먹고 들어간다라는 곽부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한 번에 깨 준 앨범이 바로 1995년 5월에 발매된 순진전설앨범이다. 그 전까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었던 약간은 답답한 듯한 버섯머리스타일에서 완전 탈피를 한 헤어스타일과 더불어서 조형이미지까지 설계하며 온몸을 순진전설이라는 이미지로 탈바꿈한 획기적인 그의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다.
특히 타이틀곡인 순진전설은 심상치 않은 드럼연주로 시작하여 순진이라는 것이 얼마나 철 없는 감정이며, 단지 한 순간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2절의 보컬 반전까지..1995년 최고의 앨범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는 수준급의 앨범이 바로 순진전설이다.
순진전설앨범의 프로듀싱은 곽부성의 매니져인 소 미와 당시로서는 신진급 창작작곡가로 이름을 떨치던 뢰송덕이 공동으로 맡았는데, 이 앨범의 성공으로 소 미는 음악적인 능력과 센스를 더욱 더 인정받았으며 뇌송덕은 보려금의 정동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.
뇌송덕은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홍콩의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관숙이와 여자, 막문위, 왕형평 등의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를 하였으며, 1994년부터는 워너음반에 소속되어 있던 가수들인 여 자, 장위건, 곽부성, 정수문 등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게 된다. 장위건의 1994년 광동어앨범 180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프로듀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, 순진전설앨범은 그의 초창기 프료듀서 생활에 있어 크나큰 성공으로 기록하게 된다. 어쩌면 그 동안 TVB방송국에서 음악부문의 큰 손으로 있으면서 음악적인 센스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소 미에게 뢰송덕은 놓치고 싶지 않은 참신한 새 작곡가였을지도..
뭐..뢰송덕은 같은 해 국어앨범인 풍부식(風不息)에서 한 번 더 호흡을 맞춘 후 지금은 더 이상 같이 음반작업을 하고 있지 않지만(1997년 홍콩반환 기념 아시아 뮤직 페스티벌 주제곡인 천마행공은 예외) 후에 줄기차게 작업을 하고 사업적 파트너로서 친한 친구로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여 명보다도 오히려 더욱 더 잘 어울리는 가수는 곽부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뢰송덕의 음악적 코드와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든다.


연주, 곡의 전개, 가사, 곽부성의 보컬, 장숙평과 서가안의 이미지조형까지 그 어떤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함을 보였던 노래이기에, 곽부성의 베스트5에 주저없이 이 노래를 뽑을만큼 대중적으로나 홍콩음악의 비평적으로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최고중의 최고가 아닐까 싶다.




덧글
이 앨범에 있던 '강'도 너무 좋았는데 뇌송덕이랑 애런이랑 정말 잘 어울려고 또 같이 작업 했음!!
애런이랑 뢰송덕이랑 96년 이후 천마행공 말고는 전혀 작업이 없으니..넘 안타까워요
첫 시작에 꽝! 하는 소리에 뒤집어지게 놀랐던..
그 때가 생각나는군요...후후...
그 이후로 사는 앨범들은 처음에 볼륨을 줄여놓았는지 확인하고 재생을 누르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죠;;;